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연보>
(1792-1835)
- 1792년
2월 12일
프랑스 카르카손 교구 나르본 근교 레삭도드에서 프랑수아 브뤼기에르와 테레즈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탄생
- 1805-1814년
- 카르카손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수학
- 1814년
3월 26일
차부제품, 카르카손 소신학교 교사(5년)
- 1815년
12월 23일
사제 서품
- 1819년
- 카르카손 대신학교 교수(6년)
- 1825년
9월 17일
파리외방전교회 입회
- 1826년
2월 26일
보르도 항구 출발
- 1827년
6월 3일
바타비아(자카르타)와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 등을 거쳐 시암의 수도 방콕 도착.
신학교 교수 및 일선 사목
-
- 1829년
-
5월 19일
“조선 선교지와 조선 신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조선 선교를 맡겠다.”는 의견을 담은 서한을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냄
6월 9일
포교성성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조선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표명
6월 20일
시암대목구장 에스프리 플로랑 주교가 브뤼기에르 신부의 조선 선교 청원에 동의하는 서한을 포교성성 장관에게 발송
6월 29일
주교 서품. 페낭으로 건너가 성무 수행
- 1831년
9월 9일
초대 조선대목구장 임명
-
- 1832년
-
7월 25일
뒤브와 신부의 서한을 통해 조선대목구장 임명 사실을 알게 됨
8월 4일
페낭 신학교 중퇴자 왕 요셉 등과 함께 페낭 출발
* 페낭 신학교의 샤스탕 신부가 조선 선교 자원
10월 18일
마카오 도착. 포교성성의 마카오 대표부에서 조선대목구 설정 칙서와 대목구장 임명 칙서 수령
11월 18일
조선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사목 서한 작성
12월 19일
복건대목구장이 있는 복건의 복안 정두촌으로 출발
10월 18일
마카오 도착. 포교성성의 마카오 대표부에서 조선대목구 설정 칙서와 대목구장 임명 칙서 수령
11월 18일
조선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사목 서한 작성
12월 19일
복건대목구장이 있는 복건의 복안 정두촌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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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3년
-
3월 1일
복안 정두촌 도착
3월 9일
모방 신부가 조선 선교 자원
4월 27일
남경으로 출발
7월 31일
양자강 도하
8월 13일
황하 도하
8월 26일
산동을 거쳐 직예의 한 교우 집에서 1개월 정도 치료
9월 29일
살베티 주교가 사목하는 산서의 태원 구급촌으로 출발
10월 10일
태원 구급촌 도착. 건강 회복, 조선 교회 밀사들과의 연락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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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4년
-
9월 22일
라자로회의 사목 지역인 하북성의 장가구 서만자 교우촌으로 출발
10월 8일
서만자 도착. 모방 신부와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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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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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오는 연말에 주교님을 조선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한 조선 신자들의 1835년 1월 21일 자 서한 수령
10월 7일
조선 신자들과 약속한 요녕성의 국경 마을 변문으로 출발
10월 19일
내몽골 적봉시의 마가자 교우촌 도착
10월 20일
저녁 8시 15분경 선종(43세)
11월 21일
마가자 안장
- 1836년
1월 13일
모방 신부, 조선 입국
- 1931년
10월 15일
서울 용산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